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군 병영식 (문단 편집) === 1990년대 === [youtube(JO72mwPBaRs)] 1990년대 초반까지는 1980년대 중후반 급양 상태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우선적으로 식판이 플라스틱에서 스테인리스로 전방부터 순차적으로 교체되기 시작했다. 1992년 11월 18일에 제작된 대한뉴스 제 1932호 영상과 비교하면 1994년 1월 6일에 제작된 [[https://youtu.be/Gjz9JK826Q8|대한뉴스 제 1991호]]의 경우 1분 29초 구간을 보면 플라스틱 식판에서 스테인리스 식판으로 개선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. 여기에 1980년대 중후반 시기에 비해 1990년대 초반부터 식단도 개선되기 시작하여 1994년부터 시범적으로 전방 부대부터 1식 3찬에서 4찬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시작했고 이후 1997년 전군에 '''1식 4찬으로 업그레이드'''되면서 반찬이 하나 늘었다. 또한 [[돈가스]], [[짜장면]]을 비롯하여 1982년부터 시범적으로 처음 배급이 시작되기 시작한 [[군대리아]]가 1994년부터 공식적으로 전군에 배급되기 시작되고 동시에 [[콜라]] 등의 탄산음료도 보급이 시작[* 하지만 1990년대 이후로 현재는 장병 건강을 생각해서 콜라는 메뉴에서 빠졌다가 2016년부터 일부 급양대에서 다시 보급되기 시작했다. 다만 탄산음료가 아닌 건 잘 나와서 그 유명한 맛스타는 애교 수준이고 [[아이스크림]], [[두유]], 이온음료 심지어 비타민 음료도 나온다. [[사이다]]도 나오는데 이건 별로 맛없다는 의견이 다수이다.]되면서 다양한 메뉴가 추가된 것도 이 시기부터이다. 1996년부터는 [[정부양곡]][* 흔히 정부미(政府米) 등으로 불렸다가 2000년대 후반에 가서 "나라미"로 개명되었다.]에도 변화가 있어서 사실상 몇 년 이상 묵은 쌀로 취급되던 [[통일미]]가 사라지고 이전 년도 가을에 생산된 쌀을 가공해서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쌀'''(일반미)'''로 밥을 짓기 시작했다.[[http://kookbang.dema.mil.kr/kookbangWeb/view.do?ntt_writ_date=20100316&parent_no=7&bbs_id=BBSMSTR_000000000138|#]] 또한 이 시기를 전후해서 [[김치]] 또한 지역 [[농협]]에서 사다 먹기 시작하였다. 실제로 위의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대한뉴스 제 1932호로 1992년 11월 18일에 제작된 영상인데 38초 구간부터 김치가 군대에 납품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. 또한 1998년도부터는 김치도 다양해져서 아삭아삭 총각김치와 속이 꽉 찬 시원한 오이소박이가 식탁에 올랐고, 1999년에는 밋밋하던 떡국에 만두가 추가됐다. 물론 한 때 1997년 말~1998년에는 잠시 보급이 엉망이 되었던 때가 있어서 일시적으로 1식 3찬으로 후퇴했다가 다시 복구된 적이 있다. 원인은 바로 '''[[1997년 외환 위기]]'''. 이 시기에 군납업체가 여럿 부도나면서 몇몇 식자재 보급이 끊겼고 경제 위기로 인한 예산 삭감의 영향으로 반찬을 일시적으로 줄였다. 다행히 이 사태는 새로운 군납업체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예산이 다시 좋아지면서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. 김치가 군대에 납품되기 전까지는 각 부대별로 구덩이를 파고 병사들과 간부들의 부인들이 동원되어 김치를 담가서 땅에 묻었다. 김장독도 없어서 구덩이를 대충 파고 구덩이 안에 시멘트나 벽돌을 대충 쌓아 방벽을 만든 뒤 그 안에 김치를 넣는 것[* 그래서 김장굴이 무너져 병사가 깔려 죽은 사건 사고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.]이었는데 물론 군대이다 보니 액젓이나 젓갈 등의 재료가 매우 부족한 현실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지만 김치가 아니라 단순히 짠지 수준의 맛이었다고 하며 여기에 1970년대까지만 해도 "[[김치]]를 창고에 그대로 보관하다 보니, 창고 서까래 위를 달리던 [[쥐]]가 김치 더미에 빠져 같이 숙성되어 있더라"는 경험담도 있었으며 여기에 장병의 부모(주로 어머니)들을 불러다가 병사들이 먹을 김치를 담그게 한 사례까지 있었다.[* 이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귀한 자식 군대에 데려온 것도 모자라 부모의 노동력과 돈까지 갈취한 사례이지만 (물론 부모들을 병사들 대하듯 막말하거나 막 부려먹은 건 아니지만 보수를 주는 것도 아니면서 사비로 차비 내고 부대까지 와서 자기 손으로 김치 담가주고 돌아가라고 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비정상적인 일이다.), 당시 부모들은 안 하면 자기 자식이 제대로 된 김치를 못 먹는다니 할 수 없이 가서 해 주었다. 심지어 부대에서 준비한 재료는 겨우 배추나 무우에 소금 정도이고 양념재료는 액젓이나 젓갈은 커녕 고춧가루도 부족해서 장병 부모들이 돈을 추렴해서 사오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고 한다. 그래서 개중에는 세 아들을 모두 군대에 보내면서 매번 김치 담그러 쫓아다녀서, 이걸 추억으로 승화시켜서 수기를 쓴 어머니까지 있었다고 할 정도이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